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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하여 알아보자

워터칼라 서양화가 박윤숙 2022. 6. 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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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게르니카의 비극을 파헤쳐 보자.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배경, 게르니카의 비극이 일어날 당시 피카소는 파리에 있었고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 전시관의 벽화 작업을 의뢰받고 있었는데, 그곳의 폭격 소식을 듣고, 만국 박람회에 출품 준비 중이던 화가의 모델을 접고 그곳의 폭격을 주제로, 한 달 만에 작품 게르니카를 완성했다고 한다. 오늘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들여다보며 그 배경인 게르니카의 비극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1.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배경이 된 게르니카의 비극.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배경 그곳의 비극은 바스크족에 대한 프랑코의 잔인함을 그대로 보여준 스페인의 내전이다. 1937년 4월 26일 스페인의 중세도시 게르니카의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는데, 독일군의 폭격으로 시작한다. 이 독일군의 참전은 프랑코의 지원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히틀러는 이곳을 독일 공군의 신병기 실험장으로 이용하자는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의견을 받아들여 프랑코의 지원 요청에 응했다. 그곳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집과 건물은 폭격으로 무너지고 잿더미가 되었고, 생존자들은 불에 탄 시 체들을 도로에서 치워내야 했다.

2. 영국 조사단에 의해 전 세계에 전해진 게르니카 비극.

독일군의 만행이 저질러진 게르니카의 비극. 그 끔찍한 참상이 전 세계에 전해 졌지만 프랑코 측은 그런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몇 주일 뒤 영국의 조사단이 들어왔으나 시체는 이미 소각되어 없어졌고, 잿더미 가 된 시가지를 둘러보고 그곳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계 획적으로 방화되었다.라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3.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살펴보자.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위치한 레이나 소피아 국립 현대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다. 1936년 사진작가 도라 마르를 만나 그녀가 남긴 사진을 토대로 게르니카가 탄생하게 된다. 그림의 주조색은 블랙과 그레이로 핏빛인 레드는 쓰지 않았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안에는, 죽은 아들을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 도움을 구하는 남녀, 울부짖는 말, 찢어진 깃발, 부러진 칼, 무심한 눈빛의 소, 그림에는 피카소의 전쟁과 파시스트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표현되었다. 그에게 황소란 어떤 의미였을까? 황소의 폭력적인 모습은 그림에서 보면 군부 독재자들을 상징한다.

 

몇 년 전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을 찾아 반전의 상징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것을 그리기 위한 부분 부분의 세밀한 수많은 뎃셍작품들을 보며 깊은 각성과 감탄을 자아냈던 기억이 있다.

 

1939년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유럽 여러 도시들에서 전시된 후 뉴욕의 근대미술관에 전시되었고 피카소는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다. 1973년 피카소는 스페인의 민주정치가 부활되는 날 그림을 스페인 땅으로 보내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또한 피카소는 비난받아야 할 것은 공습을 주도한 히틀러 정권이 아니라 실제로 폭격을 사주한 스페인 군부임을 고발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1975년 11월 프랑코가 사망한 뒤에야 비로소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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