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베를린 비엔날레 문제점을 알아보자.

워터칼라 서양화가 박윤숙 2022. 7.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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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광활한 동쪽에서 광활한 세계로. 베를린 비엔날레가 6월 10일에 시작 독일 수도의 오랜 지역 유산과 글로벌 열망을 반영하여 다양성과 식민주의를 취하며 세계로의 창을 열었다. 우리가 묻고 싶은 주요 질문 중 하나를 베를린 비엔날레의 큐레이터인 프랑스 예술가 Kader Attia가 설명한다. 오늘날의 식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주제는 예술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다양성, 세계화, 인종차별이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식민주의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치유되거나 정리된 적이 없다. 그것은 유령의 사자처럼 사회를 괴롭힌다. 오늘은 우리의 미래인 베를린 비엔날레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보겠다.

1. 베를린 비엔날레 국제 예술도시로 성장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국제 예술 도시로서의 베를린의 명성은 세계의 수도로서의 위상과 함께 성장했다. 2000년부터 이곳에서 발행된 DAAD (독일 학술 교류 서비스) 및 잡지 Texte zur Kunst와 같은 구조 덕분에 독일의 예술 현장은 오랫동안 지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독일의 식민 역사에 대한 질문은 역사적으로 가까운 트라우마로 인해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베를린 비엔날레는 사회적 참여를 예술에 중점을 둔 전시다. 이러한 변화는 부분적으로 도시가 더욱 다양해짐에 따라 동기 부여가 되었다.

2. 베를린 비엔날레 다양성을 향해 변화하다.

1990년대 이후로 사람들은 베를린으로 이주하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예술가들이 덜 남성적이고, 덜 백인적이고, 덜 독일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지만, 게이트키퍼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비평가)의 수준에서도 더 큰 다양성을 향한 경향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전에 고립된 독일 역사의 일부를 연결하게 한다. 베를린은 여전히 전 세계 현대 미술 담론의 제1의 중심지지만 이것은 예술 현장을 구성하는 개인의 네트워크에서 비롯된다. 이에 베를린 비엔날레는 한 역할을 하게 된다.

3. 베를린 비엔날레 공공 프로그램에 동등한 비중 둔다.

올해 베를린 비엔날레는 전시와 공공 프로그램에 동등한 비중을 두고 있다. 큐레이터 팀 멤버인 Ana Teixeira Pinto는 예를 들어 식민지 추출과 현재 환경 위기의 관계를 매핑하는 수리, 생태학 및 복원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다. 분권화 및 다양화를 위한 노력은 각각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예술가들을 전시하는 데 중점을 둔 비엔날레의 이전 두 번에서도 수행되었다. Pinto는 다양성을 향한 이러한 움직임이 중요하다. 특히 상황이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녀는 10년 전 베를린의 예술이 NATO 예술이라고 말한 사람은 마리아 린드 (Maria Lind)였다고 생각한다.

4. 베를린 비엔날레 글로벌 전환으로 방향성 찾는다.

베를린 비엔날레. 독일 전후 예술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New York-Cologne 파이프 라인을 구축했다. 그러나 또한 Haus der Kulturen der Welt에서 열린 2017년 전시회, Parapolitics: Cultural Freedom and Cold War - 이데올로기의 소프트 파워 도구. 1990년대부터 그의 작품에서 서구 정경 너머의 맥락에 관여해 온 네덜란드 예술가 Willem de Rooij는 이러한 미국의 도그마에 대한 지속적인 구독이 다양성에 대한 많은 혼란을 가져온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베를린은 매우 다양한 장소, 그것은 단지 매우 흰색이다. 1990년대에는 베를린이 동유럽에 필요한 초점이었다. 글로벌 전환으로 더 많은 방향을 찾고 있다.

5. 베를린 비엔날레 기피하던 역사의 한 부분 전시.

동독의 여전히 불안정한 유산은 식민주의에 대한 Attia의 탐구로 해결될 것이다. 제12회 베를린 비엔날레는 이전 사회주의 유럽을 일반적으로 남반구를 대상으로 한 대화로 이어진다. 리히텐베르크 지구, 동양의 많은 시민들은 통일을 신자유주의 식민화의 한 형태로 인식했다.라고 Attia는 말한다. 지금까지 거의 다루지 않았던 역사의 한 부분인데 이번 전시에서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또 다른 장소인 Wilhelmstrasse 92는 1884/85년 서아프리카에 대한 베를린 회의가 개최된 곳이기도 하다.

6. 베를린 비엔날레 기관이 무게 두기 시작했다.

기관 차원에서 큐레이터 Julia Grosse와 Yvette Mutumba가 창간한 비유럽 미술에 중점을 둔 잡지 인 Contemporary And와 예술 공간인 Savvy Contemporary는 탈식민주의 담론에서 중요한 거점이다. 2009년 창립 이래 Savvy를 이끌고 있는 Bonaventure Soh Bejeng Ndikung은 2023년 1월에 담론 중심의 Haus der Kulturen der Welt(세계 문화의 집)의 이사로, 그로피우스의 Zippora Elders 및 Natasha Ginwala와 같은 큐레이터로 발탁된다. Hamburger Bahnhof의 Bau와 Anna-Catharina Gebbers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것은 기관이 무게를 두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7. 베를린 비엔날레 식민지 배상 문제 제기하다.

베를린 비엔날레의 Atta는 민족지학 박물관(Ethnographic Museum)과 아시아 미술관 (Museum of Asian Art)과 같은 기관의 본거지인 새로운 훔볼트 포럼 (Humboldt Forum)은 비서구적 대상을 전시하는 접근 방식에서 강제적이고 구식이라고 느낀다. 프랑크푸르트 세계 문화 박물관의 전 관장이자 현재 KW 현대 미술 연구소의 부 큐레이터인 Clementine Deliss는 베를린 박물관 섬의 새 성을 끔찍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예를 들어 비엔날레에서 배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종종 배상에 대한 중심적인 초점이 접근을 민주화하는 보다 시급한 문제를 모호하게 한다는 것은 실망스럽다.

8. 베를린 비엔날레 Bardaouil과 Till Fellrath에 지점 선정.

Klaus Biesenbach가 새로 재개관한 New National Gallery를 이끌고 함부르크 반호프에서 Sam Bardaouil과 Till Fellrath 듀오가 도시의 예술 현장을 위한 지점에 선정되었는지 묻는 질문에 Deliss는 한 단어로 전문성이라고 대답한다. 20년 전만 해도 이것은 베를린의 예술계와 관련이 있는 단어가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베를린의 많은 다리 아래로 많은 물이 흘렀다. 여기 예술 세계가 훨씬 더 전문적이 되었다. 이전에는 갤러리를 시작하고 실험적이었다가 어느 시점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오늘날, 그것은 훨씬 더 복잡하다. 즉, 크고 작은 플레이어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9. 베를린 비엔날레 예술 현장을 특별하게 만들다.

베를린의 예술 현장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여전히 아래에서 위로 오는 이니셔티브다.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 공간이 존재하는지 놀랍다. 훌륭하고 많은 지원을 이용할 수 있다. De Rooij는 AFSAR(Asian Feminist Studio for Art and Research)과 같은 풀뿌리 조직과 종종 비서구적 예술에 대한 사려 깊은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국영 ifa 갤러리와 같은 보다 확고한 주역을 긍정적인 발전으로 본다. 최근 전시회가 컬렉션의 역사와 관련된 Brucke 박물관, 독일의 수도는 더 이상 가난하지만 섹시하지 않을 수 있다. 훔볼트 포럼과 같은 장소의 무모함은 젊음과 반항에 대한 베를린의 임대를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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