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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를 알아보자

워터칼라 서양화가 박윤숙 2022. 7.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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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살다 간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 장난전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 거리의 예술가, 검은 피카소, 비운의 천재, 순수함을 담은 폭력을 그린 화가, 등등 그를  칭하는 많은 단어들이 난무한다. 마치 그의 그림처럼. 어지러운 단어들을 보면 바스키아의 인생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오늘은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의 어린 시절부터 거리의 예술가에서 1980년대 대표화가로 자리매김하는 그의 삶을 그림과 함께 반추해보자.

1.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의 어린시절을 보자.

바스키아는 부르클린 의 중산층 가정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린 시절 그는 만화를 즐겨 봤다. 만화가가 되길  꿈꿀 정도로 틈이 날 때마다 책이나 공책에 끊임없이 만화를 그렸다. 이런 경험은 후일 작품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가 8세 된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여 큰 부상을 입고 입원을 하게 되고, 이때 그의 어머니는 내 몸을 잘 알게 되면 치유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인체 해부학 책을 가져다주었다. 책 속에는 장기와 뼈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8세의 그는 여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은 바스키아의 전 생애에 걸쳐 그의 그림의 소재가 된다. 그의 그림에 해골과 장기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2.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 17세에 거리의 화가 된다.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는 17세가 된 어느 날 다니던 학교를 자퇴한다. 이에 격분한 아버지는 집에서는\ 쫓아낸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티셔츠와 엽서를 팔기도 하고  미술관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삶을 꾸려나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예술가들의 삶을 보며 자신의 현실과 괴리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알 디아즈라는 낙서화가를 만나게 된다. 둘은 서로의 작품세계에 공감해 SAMO라는 크루를 결성한다. SAMO란 흔해빠진, 낡은 것이라는 뜻이다.  SAMO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거리의 곳곳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남겼다.

3.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 앤디워홀과 만나다.

천재들의 운명적인 만남. 우연히 앤디 워홀과 부르너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자기의 그림을 헐값으로 팔게 된다. 이때 천재 앤디 워홀은 처재를 알아본다. 그를 통해 미술평론가 르네 라카드를 만나 인정을 받고 뉴욕의 뉴 웨이브전에 출품하게 된다. 그곳에서 바스키아는 주목받게 되고 앤디 워홀과 부르너 그리고 야니니를 만나 작업공간과 많은 것들을 제공받게 되고 심지어 자기를 무시했던 게리 올드먼도 찾아오게 된다. 백인 중심의 문화 속에서 스타가 되고 싶었던 그는 SAMO'S DEAD를 남기고 독립적이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친했던 친구 대니와 여자 친구 지나를 떠나보내고 행복할 수는 없었다.

4.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의 예술속으로 들어가 보자.

거대한 동물속에 사람과 동물이 등장하는 그림에선 마치 사람이 소를 끌고 가는 모습인데 인물은 뼈가 앙상하고 풍부하게 살찐 소를 표현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꼬집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인체 드로잉 안에는 자동차와 비명을 담은 A가 많이 등장한다. 인종차별적인 경험으로 유색인 영웅을 존경했던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는 17세부터 자신이 셀럽이 되길 바랐다. 유명해지는 것에 대해 나는 낭만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등분된 나무 패널을 이어 붙인 작품은 하단엔 강렬하게 뻗어나가는 붉은 터치로 잔인한 무엇인가가 펼쳐지고 상단에는 모든 것을 성취한 왕관을 쓴 사람과 천사가 있다.

5.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의 영웅시대를 만나보자.

비주류의 정서가 유행하던 시기 덕분에 반항적인 이미지의 SAMO는 뉴욕 시민들에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이 시기부터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는 자기 그림 속에 그는 COPY RIGHT 기호를 적어 넣어 자신의 소유권과 권위, 자부심을 나타냈다. 인종차별을 당하는 유색인이 마치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처럼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이 자기 자신임을 암시하듯 사회를 향한 저항과 동시에 영웅이 되고 싶었던 바스키아는 모순된 욕망에서 괴로워했던 예술가, 유명세만을 추구한 사업가라는 비난을 받은 앤디 워홀과 서로의 천재성으로 영감을 나누고 협업까지 하게 되며 예술적 동지로 오래 함께 한다.

6.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 안의 해부학과 낙서들의 역할은?

길거리에서 캔버스까지 비운의 천재 현대미술의 악동은 낙서를 위갈린것 같은 정리돼 않은 선과 강하고 분명한 색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독창적인 화법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의 그림엔 특유의 상징과 기호들이 많이 등장하고 왕관이 많이 등장하는 데 그것은 그의 삶과 관련이 있다. 어릴 때 탐닉했던 해부학 책과 만화의 영향으로 해골과 장기들을 토속적인 그의 특유한 느낌으로 활용했고 이를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경쾌하게 풀어내는 게 가능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빈치의 인체 해부도와 역사 속에 다양한 해부와 신체 , 뼈 그림에 매료된다.

7.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의 분노는 무엇일까?

바스키아의 작품 속엔 낙서와 단어들이 뒤죽박죽 혼재된 만화의 느낌으로 남아있다. 그 속엔 미국 사회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며 시대에 대한 저항과 분노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런 물음에 대한 답으로 그는 내 작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당신의 악기는 어떻게 소리가 나나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며, 나는 갤러리의 마스코트가 아니라 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예술가들에게 인정을 받아 키스 해링이나 케니 샤프 같은 팝 아티스트들과도 친분을 나눈다. 이들도 거리의 예술가로 시작했다.

8.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 유명 예술가 되다.

워홀의 재력과 타고난 마케팅 실력으로 바스키아를 빠르게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유명화가의 길에 성큼 들어선 바스키아는 세계적인 미술시장에서 독창적인 자기만의 화풍으로 예술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는 이 시기에 인물을 담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특히 당시 인종차별적인 사회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바스키아는 주류 예술계에 처음 등장하는 흑인 예술가이기도 했다. 이를 잘 감지함 그는 불평등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흑인, 히스패닉 영웅들을 그려 넣었다. 재즈 아티스트, 인권운동가, 복싱선수가 그 대상이 됐다. 그러면서 영웅들의 머리 위에 왕관을 그려 넣었다.

현대미술의 악동 바스키아 영웅 되다.

바스키아 작품 속의 왕관은 자신이 담는 인물에 대한 존경과 찬미의 의미를 담았고, 카피라이트 표시와 같이 자신의 작품 속에 권위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했다. 나는 흑인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그저 예술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스키아는 워홀 덕분에 꿈을 이루었지만 그 유명세 덕분에 고통을 받기도 한다. 언론은 그 둘의 관계를 의심했고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렸다. 이 시기에 워홀과 공동 기획한 전시가 실패하면서 둘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고, 1987년 워홀의 심장발작으로 인한 사망 소식으로 커다란 상실감에 빠져 1년 뒤인 1988년 약물중독으로 사망한다.

 

사람들은 바스키아의 작품을 순수함을 담은 폭력, 죽음을 담은 생명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그의 작품 속에 남긴 다양한 기호들이 그런 고민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삶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화풍은 지금까지도 패션과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바스키아는 불꽃처럼 살았다. 그는 진정 밝게 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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